몸을 기계처럼 바라보는 시선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질문에 도달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의학을 ‘과학’으로만 이해하게 되었을까?
지금의 의료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말은 매우 강력하다.
그 말 한마디면
치료의 타당성이 설명되고,
선택의 기준이 되며,
논쟁이 정리된다.
마치 과학이라는 기준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잣대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 흐름은 이해할 수 있다.
과학은
반복 가능하고,
측정 가능하며,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다.
즉 누구나 같은 조건에서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다.
의학이 이런 방향으로 발전해온 것은
오히려 필연에 가깝다.
감염, 외상, 수술, 약물 치료.
이런 분야에서 과학적 접근은
수많은 생명을 살렸고,
의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문제는
이 기준이 점점 확대되면서
모든 영역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사람의 움직임과 기능,
그리고 만성적인 통증 영역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논문은 보통
평균을 이야기한다.
특정 집단에서
어떤 방법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는지를 말한다.
하지만 임상에서 만나는 사람은
평균이 아니다.
각자의 삶을 가지고 있고,
각자의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의 몸의 역사와 패턴을 가지고 있다.
같은 진단명을 가지고 와도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느낀다.
논문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정답을 주지는 않는다.
과학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왜 어떤 사람은 잘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는지.
왜 같은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도
통증의 정도가 다른지.
왜 치료 직후 좋아졌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지.
이런 질문들은
단순한 수치나 평균값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과학은
의학의 기반이다.
하지만 그것이
의학의 전부는 아니다.
특히 사람의 몸을 다루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큰 방향을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눈앞의 한 사람을 통해
그 방향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둘 사이의 간극을 이해하는 것.
아마 그것이
임상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논문을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보려 한다.
다만 그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결과가 왜 나왔는지,
그리고 누구에게 적용되는지
항상 함께 고민하려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과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는 말에
그토록 쉽게 설득되는 걸까?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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