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동안
논문을 ‘정답’처럼 받아들였던 시기가 있었다.
과학적으로 입증된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변화.
객관적으로 검증된 방법.
이 말들은 충분히 설득력 있었고,
임상에서 방향을 잡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결과는 정말 ‘진실’일까?
처음에는 그 질문이 불편했다.
논문을 의심하는 것이
마치 과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상은 계속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같은 연구에서 효과가 있다고 했던 방법이
누군가에게는 분명 잘 맞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심지어 같은 사람에게도
어떤 날은 효과가 있고,
어떤 날은 전혀 반응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논문이 말하는 것은
‘진실’이라기보다,
‘평균적인 경향’에 가깝다는 것을.
연구는 기본적으로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하나의 값으로 정리한다.
즉 다양한 반응들을
하나의 평균값으로 압축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생기는 것이 있다.
바로 차이의 소실이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큰 효과가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거의 효과가 없었더라도,
그 모든 결과는
하나의 평균값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런 착각을 하게 된다.
평균이 곧 개인의 결과일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평균이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삶을 가지고 있고,
그 사람만의 패턴과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점점
논문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이 방법이 효과가 있는가? 보다,
어떤 조건에서 효과가 있었는가를 먼저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조건이
눈앞의 사람과 얼마나 맞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과정이 없다면
논문은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착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논문을 이렇게 이해한다.
논문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참고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그대로 적용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왜 어떤 사람은 좋아지고,
왜 어떤 사람은 변하지 않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평균이 아니라 개별을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논문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정답으로 쓰지 않을 뿐이다.
논문은 길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그 길을 어떻게 걸을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평균’을 믿고 싶어하는 걸까?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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