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을 찾으려는 태도는
개인의 성향만의 문제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방식은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배워온 사고 방식에 가깝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배워왔다.
문제가 주어지면
정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정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사람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학교에서의 시험도,
자격증 시험도,
대부분의 교육 과정도
이 구조를 따른다.
틀린 답은 감점이 되고,
맞는 답은 점수가 된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기준을 내면화하게 된다.
‘문제에는 반드시 정답이 존재한다’는 믿음.
이 믿음은
많은 영역에서 유효하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공식을 적용할 때도,
기본 원리를 이해할 때도
정답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방식이
사람을 다루는 영역까지 그대로 확장될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사람의 몸은
정답형 문제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같은 조건을 주어도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같은 치료를 해도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자꾸 같은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이게 맞나요?”
“이게 정답인가요?”
그리고 그 질문을 받는 사람 역시
답을 주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점점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만들고,
다양한 변수를 줄이고,
하나의 정답처럼 보이게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엇이 빠질까.
사람이라는 변수다.
삶의 패턴, 습관, 환경, 감정.
이런 요소들은
정답형 구조 안에 넣기 어렵다.
그래서 종종
배제되거나 단순화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요소들이야말로
결과를 바꾸는 핵심일 수 있다.
나는 임상을 하면서
그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했다.
같은 치료보다
생활을 바꾼 사람이 더 오래 유지되고,
같은 기술보다
패턴을 이해한 사람이 더 빠르게 변한다.
그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해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이제
정답을 말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려 한다.
이 사람에게 어떤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가.
무엇이 이 상태를 유지시키고 있는가.
어떤 변화가 이 흐름을 바꿀 수 있는가.
그 질문이 쌓일수록
비슷한 문제라도
전혀 다른 접근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비로소 임상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이해를 쌓는 과정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복잡한 ‘사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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